영화 〈박열〉은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 탄압의 소용돌이 속에서 독립운동가 박열과 일본인 동지 가네코 후미코가 어떻게 사상과 실천으로 맞섰는지를 뒤따라간다. 실화에 기반한 재판 기록, 신문 보도, 동시대 풍경을 촘촘히 엮어 권력의 선전과 검열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도 ‘정의’의 언어로 포장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보여 준다. 더불어 두 인물의 연대와 자존, 자유에 대한 급진적 믿음을 통해 오늘 우리가 왜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지, 그리고 혐오와 낙인에 맞서 어떤 언어로 저항할 것인지를 묻는 작품이다.
1. 박열의 생애와 독립운동
박열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청년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언어, 직업, 신분의 경계를 넘어 급진적 사상을 체득했다. 그는 일본 내 조선인 유학생 공동체와 진보적 지식인 네트워크 속에서 아나키즘과 반제국주의 사상을 접했고, 불령사 등 소모임을 통해 출판·낭독·토론의 방식으로 체제 비판을 실천했다. 영화는 그의 방식이 파괴적 폭력의 환호가 아니라, 권력의 허구를 드러내는 언어적·상징적 전복에 가까웠음을 강조한다.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 폭동설’이 날조되어 살육과 검문검색이 일상화되자, 그는 공개적으로 국가 폭력을 폭로하고 조선인과 일본 피억압층의 연대를 주장했다. 재판 과정에서의 태도 역시 방어가 아닌 공격, 변명이 아닌 고발이었다. 그는 법정이라는 제도적 무대 위에서 제국의 언어를 빌려 제국을 반박하며, 언론의 프레임 바깥에 ‘자유인’의 목소리를 남기려 했다. 이러한 궤적은 민족해방의 틀을 넘어서 ‘권위 자체에의 저항’이라는 보편적 윤리를 오늘의 관객에게 환기한다. 즉 박열의 투쟁은 한 개인의 영웅서사가 아니라, 권력의 허구를 드러내는 시민적 실천의 역사로 독해될 때 더욱 선명해진다. 기록과 회고가 전하는 세부
우연과 선택, 동료들과의 불화, 시대의 가혹한 속도—이 얽힘 속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가장 날카로운 무기인 ‘말’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그 말은 폭력을 선동하는 주문이 아니라, 허위를 찢어내는 도구였다.
2. 가네코 후미코와의 인연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내부의 계급·젠더 억압을 온몸으로 겪으며 성장했고, 그 체험이 곧 체제에 대한 근본적 의심으로 이어졌다. 영화는 그녀가 박열과 만나 동지로 서는 장면을 로맨틱한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국적과 성별의 차이를 넘어 ‘주체적 인간으로 살겠다’는 결의에서 만난다. 후미코는 신문과 경찰 문서가 부여한 낙인을 거부하고, 법정에서 자신을 ‘국가의 피후견인’이 아닌 ‘자유인’으로 호명한다. 이는 당대 여성에게 요구되던 순응의 규범을 정면으로 깨뜨리는 급진적 행위였다. 체포와 장기 심문,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그녀는 공포를 이념으로 덮지 않았고, 오히려 모순을 똑바로 응시하는 언어로 제국의 권위를 균열 냈다. 영화는 후미코의 육성, 고백, 다짐, 반문을 통해 ‘연애’가 아닌 ‘연대’의 윤리를 구축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의존이 아니라 상호 비판과 각성의 회로로 묘사되며, 따라서 비극적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옥중 기록과 재판 진술을 참조한 대목들은 그녀가 왜 자기 행위를 ‘반국가’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 수호’로 이해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박열이 제도와 언론의 허구를 벗기는 칼날이었다면, 후미코는 삶의 내면에서 공포와 체념을 끊어내는 불씨였다. 두 불빛이 합쳐질 때, 국경과 성별, 신분의 경계는 저항의 윤리 앞에서 의미를 잃는다.
3. 영화가 던지는 현대적 메시지
〈박열〉의 가장 큰 힘은 ‘과거 재현’에 머물지 않는 시선이다. 선전과 공포가 결합될 때 혐오 루머는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는지, 언론과 사법이 어떻게 권력의 언어를 복제하는지, 그리고 시민은 그 체제 속에서 어떤 말을 가질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재판 장면은 드라마적 클라이맥스를 넘어 공적 담론의 전쟁터로 기능하며, 관객은 자연스레 오늘의 현실—가짜뉴스, 혐오 선동, 구조적 차별—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진실’이 저절로 승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진실은 말해져야 하고, 기록되어야 하며, 반복해서 증언되어야 한다. 또한 작품은 저항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관계의 균열, 운동 내부의 피로, 생계와 안전의 위기 등 현실의 마찰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자유가 값비싼 선택임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인물이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자기 언어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이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가장 현실적인 실천으로 남는다. 주변화된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확인되지 않은 공포를 의심하며, 제도적 언어가 은폐한 고통을 번역해 공론장에 올리는 일—이 연쇄적 행동이야말로 〈박열〉이 요청하는 현재형 과제다. 결국 영화는 과거의 비극을 소비하는 대신 시민적 감수성을 재훈련시키는 체험으로 완성된다.
결론
〈박열〉은 실화를 바탕으로 권력과 혐오의 동학을 해부하고, 개인의 언어가 역사를 바꾸는 시작점임을 증명한다. 영화를 본 뒤 지역 기록관·도서관의 1차 자료, 동시대 신문, 재판 기록을 함께 읽어 보자. 기억의 간극을 메우는 시민의 독해가, 오늘의 혐오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실천이다.